[360 VR TRAVEL] 남한산성, UNESCO 세계문화유산 – 4K VR 여행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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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0도 VR영상으로된 남한산성 설명 영상입니다.

#1 서문

1)
인조 임금은 남문으로 들어와 서문으로 나갔다.

서문은 사람 한명이 겨우 나갈 정도 이고
허리를 숙여야 나갈 수 있는 좁은 문이다.

2)
인조14년 석지형이 저술한 남한일기를 보면 그 장면을 이렇게 적고 있다.

임금이 서문을 나가니 세자가 그 뒤를 따랐다.
뒤따르던 문무백관들은 서문에 서서 가슴을 치면서 통곡하였다.

임금은 서문을 나가 삼전도로 향했다.

3)
임금은
살기위해 강을 넘어 남한산성으로 왔고
살기위해 다시 삼전도로 향했을 것이다.

그렇게 살기 위해 좁디좁은 서문을 빠져나가
삼전도에서 청군 앞에 세번 절하고 아홉번 머리를 조아렸다.

#2 남한산성 전체 설명

4)
수도 서울을 지키는 외곽에는 4개의 요새가 있다.
북쪽으로는 개성, 남쪽으로는 수원, 서쪽으로는 강화, 동쪽으로는 광주이다.
광주의 남한산 위에는 산성이 있는데
그 산성이 바로 남한산성이다.

5)
남한산성은 서울 동남쪽으로 24km가량 떨어져 있으며
해발 500미터 ,성벽 높이 7.5m, 둘레 11.76km의 성벽을 이루고 있다.

6)
남한산성은 통일신라시대의 옛 주장성터에
인조가 다시 성을 쌓은 것으로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화강편마암으로 축성하였다.

이곳에는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의 건물터가 발견되어 보존되고 있다.
이를 보면 오래전부터 수도 서울을 지키는 전략적 요충지 역할을 한 셈이다.

7)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강대국의 많은 침략을 당했었다.
병력의 수가 주요한 군사력으로 여겨졌던던 시대에, 수적열세를 대비하기 위해
청야입보 전략을 썼다고 한다.

청야입보 전략이란 들판을 깨끗이 비우고, 백성들을 성 안으로 철수시켜
성을 지키는 수성전을 하는 것을 말한다.

남한산성은 군사적 전략에 정확히 들어맞는 장소였던 것이다.

#2-1 암문
8)
남한산성에는 16개의 암문이 있다.
성내에 필요한 병기나 식량들을 은밀히 운반하는 비밀통로인 셈이다.

눈에 띄면 안되기 때문에 한 사람이 허리를 숙여 겨우 지나갈 수 있도록 작게 만들었으며
외부에서 식별할수 없도록 별다른 시설은 하지 않았다.

#2-2 행궁
9)
임금이 서울 궁궐을 떠나 임시로 거쳐하는 곳이 행궁이다.
전국적으로 행궁이 존재했는데 좌전과 우실 즉, 종묘와 사직을 두고 있는 유일한 행궁이
남한산성 행궁이다.
그만큼 유사시 남한산성은 임시수도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설계된 곳이라 할 수 있다.

10)
실제로 병자호란 당시 이 행궁에 인조는 47일간 기거했다.

11)
행궁은 상궐과 하궐로 나뉘는데 이곳 외행전은 하궐의 중심 건물로 정당이라고도 하였다.
궁궐로 보면 집무를 보는 편전에 해당한다.
병자호란 당시 한봉에서 청군이 대포를 쏘아 외행전 기둥을 맞추어 인조가 내행전으로 거처를 옮겼다는 기록이 있다.

12)
내행전은 임금의 침전으로 폐쇄적인 배치구조로 되어있다.

#3 남문
13)
이곳 남문 즉, 지화문은 남한산성의 정문이다. 네개의 성문중 그 규모가 가장 크다.
병자호란 당시 인조는 이 남문으로 들어왔다.

14)
남문 앞에는 400년이 넘은 느티나무가 자리잡고 있는데
1626년 인조4년에 심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모든 역사의 현장에서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느티나무를 보고 있으면
수백년의 역사의 산 증인 같은 느낌이 든다.

#4 수어장대
15)
남문에서 성곽을 따라 30분 가량 올라가면 수어장대가 나온다.
당시 함께 지어진 5개의 장대 가운대 현재 유일하게 남아있는 장대로
장수가 지휘와 관측을 하기 위한 군사적인 건물이다.

원래는 1층건물이었으나 1751년 영조의 명령으로 2층으로 만들어졌다.

#5 북문
16)
당시 영의정 김류의 주장으로 300여명의 병력이 북문을 열고 나가 싸웠으나
전멸하였다.

17)
당시 남한산성 전투중 유일하게 나가서 싸운 전투였으며 최대의 참패였다.
이후 이문의 이름을 전승문이라 하였는데, 패하지 않고 모두 승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6 연주봉 옹성 — 여기서 다시
18)
옹성은 원래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 지는 것이나, 남한산성의 옹성은 조금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성 밖에서 성벽을 보호하거나 포대를 설치하기 위해 옹성을 만들었으며 가장 대표적인 옹성이 지금 보는 연주봉 옹성이다.

19)
연주봉 옹성에서 서울을 보면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위치 선정이 좋다.

#7 동문
20)
동문은 낮은 지대에 있었고 동문앞에 계단을 쌓아 우마차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지금은 동문 옆에 도로가 뚫려있다.

#마무리
21)
남한산성의 성곽 하단은 통일신라 주장성때의 것이고, 상단은 조선시대의 것인데 이 둘이 혼재되어 있다.
유네스코는 남한산성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데 있어
이와같이 통일신라, 고려, 조선으로 내려오는 다양한 양식이 결합된 역사 유적지 임을 높게 평가 하였다.

22)
남한산성은 병자호란으로 인조가 47일간 머무른 곳이다.
청나라와의 강화를 주장하고 실리를 주장하는 최명길과
명나라와의 의리를 지키며 끝까지 싸우자는 김상헌의 주장이 맞부딛쳤다.

모든 주장이 살고자 하는 것이었고 또 죽고자 하는 것이었다.

23)
병자호란 이후에도 역사는 반복되었다.
강대국의 중심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 상황의 연속은
계속되고 또 계속되어 오늘에 이른다.

24)
최명길이 옳았는지 김상헌이 옳았는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또 다른 방식으로 강대국이 되는 길을 찾지 않으면
우리의 역사는 앞으로도 이렇게 반복되리라 생각이 된다.

25)
남한산성은 산성 자체의 역사적의미도 있지만
우리에게 많은것을 깨우치게 해주는 철학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음악은 저작권이 모두 해결되었으며 아래 음악은 출처표시를 합니다.
Kevin MacLeod의 Achilles – Strings은(는)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라이선스(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4.0/)에 따라 라이선스가 부여됩니다.
출처: http://incompetech.com/music/royalty-free/index.html?isrc=USUAN1100463
아티스트: http://incompetec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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